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러고서
꽃잎처럼 떨어져간 전우야 잘자라
우거진 수풀을 헤치면서
앞으로 앞으로
추풍령아 잘 있거라
우리는 돌진한다
달빛 어린 고개에서
마지막 나누어 먹던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
터지는 포탄을 무릅쓰고
앞으로 앞으로
한강수야 잘 있느냐
우리는 돌아왔다
흙이 묻은 철갑모를
손으로 어루 만지니
떠 오른다 내 가슴에
꽃 같이 별 같이
'전우야 잘자라' 는 6.25전쟁때 진중가요로 많이 애창되던 노래였다고 한다.
혼자 부르면 심심하고 여럿이 행군할때 함께 부르면 신바람이났다는 노래였다.
언제부턴가 진중에서만이 아닌 온국민이 함께 부러는 국민가요가 되었다고한다.
1968년 5월 어느날이었다. 50여 년이 다 되어가는, 정확히 49년전의 일이었다.
육군, 논산훈련소에서 신병교육을 받고 있을 때였다.
00연대 13중대 훈병들이 엠1소총 기록사격을 하고있었다. 군대를 다녀온 대한민국 남정네라면 알 것이다.
사선(射線)의 군기가 얼마나 엄격한가를.
사격이 끝나고 조교의 "10분간 휴식!" 구령이 떨어졌다.
"10분간 휴식!" 훈병들은 그렇게 복창을 하고 꿀맛같은 휴식에 들어갔다.
대부분의 훈병들은 땅바닥에 벌렁드러누워 담배 한 개피를 입에 물고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처럼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훈병들도 하늘을 올려다보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입안에는 담배대신 드롭프스가 녹아가고 있었다.
10분은 금방 닳아 없어진다.
조교의 "휴식끝, 사총 풀어" 라는 구령이 떨어지자 훈병들은 조교의 구령을 따라한 뒤 사총을 풀려고 달려갔다.
그때였다. "탕!" 하는 엠1소총 특유의 묵직한 총성이 들려왔다. 총성과 동시에 "윽, 윽!"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두명의 훈병이 퍽퍽 쓰려졌다.
사선은 군기가 칼날처럼 차갑고 엄하다고 서두에서 언급했다. 사격이 끝난 사수는 통제관의 철저한 통제를 받는다.
"좌선 사격끝"
"우선 사격끝"
조교들의 보고를 받은 통제관이 구령한다.
"좌선 사격끝. 우선 사격끝. 전사선 사격끝. 사격이 끝난 사수는 노리쇠를 후퇴시키고 약실검사"
통제관의 구령에 사수들은 일제히 노리쇠를 후퇴시키고 손가락을 약실에 집어넣어 총알이 없으면,
"이상무!" 라고 복창을 한다.
사선을 내려오면, "소총 개머리판 오른쪽 어깨에 올리고 격발." 조교의 구령에 총기의 안전점검은 또 다시 이행된다.
이십세 청춘은 징집(徵集)의 해당자
정든고향 뒤에 두고 일선으로 가누나
폭탄터진 일선에서 영자 씨가 그리워
영자 씨가 그리우니 고향생각 절로 난다
그 옛날 선배세대들이 잘 부르던 노래였다.
내가 입영할 당시만해도 징집에 해당되는 나이면, 군인으로서 갖춰야할 키와 몸무게가 적정하고 시력과 청력, 치아에 이상이 없으면 무조건 입영해야했다. 좀 남고 처지고는 불문에 붙혔다.
그래서 휴가때 고향집을 찾아가지 못하는 병사가 있어서 데려다주어야 하는 일도 벌어졌다. 병영에서는 그런 사병을 고문관이라고 불렀다.
총기오발사고를 일으킨 훈병도 분명, 그러한 고문관이었을 것이다.
총을 맞은 두 훈병은 스물두 살 꽃다운 나이었다.
먼저 맞은 병사는 후송된지 삼일만에 절명했고, 나중에 맞은 훈병은 그자리에서 즉사했다.
즉사한 훈병은 김정용이었다. 입영열차를 함께 타고 입영한 문경의 이웃 고을, 상주장정 정용이었다.
그날밤 내무반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로부터 49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다. 죽은 정용이는 잊혀진 전우가 되었고, 살아있는 나는 일흔한 살 노인이 되었다.
'어이, 정용이. 대한민국 훈병 김정용이!' 오늘밤 우리 꿈속에서 만나 유석근이, 유한이, 김영일이와 그때의 전우들 모두 모아놓고 질펀하게 회식한번 하세. 막걸리 몇잔에 얼굴 불콰해지거던 우리 그옛날 선배들이 낙동강전투에서 불렀다는 '전우야 잘자라' 를 소리높여 합창하세.
우거진 수풀을 헤치면서
앞으로 앞으로
추풍령아 잘있거라
우리는 돌진한다
달빛 어린 고개에서
마지막 나누어 먹던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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