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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숭아/김상옥

비오자 장독간에 봉숭아 반만 벌어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두고 볼것인가 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 누님이 편지보며 하마 울까 웃으실까 눈앞에 삼삼이는 고향집을 그리며 손톱에 꽃물들이던 그날 생각 하시리 양지에 마주 앉아 실로 찬찬 매어주던 하얀 손 가락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을 지금은 꿈속에 본 듯 힘줄만이 서노니 해마다 여름이 오고 봉숭아가 곱게 필즘이면 떠오르는 시조입니다. 예전엔 이런 노래도 불렀답니다. 울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긴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 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시조 2021.07.06

오는 봄 가는 봄/문경아제

봄은 누구에게 들킬세라 땅에 납작 엎드려 살살 기어서 온다 봄은 택지에 살고 있는 시집간 우리 집 애물단지 딸내미처럼 소리 없이 살짝쿵 온다 봄은 우리 집 애물단지 딸내미와 사촌 사이다 해대는 짓똥머리가 엇비슷하기 때문이다 산과 들에 꽃불 질러놓고 그냥 달아나는 봄이나, 늙은 어미 가슴에 온갖 잔소리 퍼부어대고 가는 우리 집 딸내미나 그놈이 그놈이다 언제 갔는지 도둑놈처럼 가고 없는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도 없는 두 놈은 발그스름한 얼굴조차 닮았다

2021.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