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題/金炳淵
四脚松盤 粥一器 天光雲影 共徘徊(사각송반 죽일기 천광운영 공배회)
主人莫道 無顔色 吾愛靑山 倒水來(주인막도 무안색 오애청산 도수래)
네 다리 소나무반에 죽 한 그릇이어라
하늘빛과 구름그림자가 죽 속에 함께 노니는구나
주인이시여 부끄러워할 것 없소이다
이 몸은 물에 드리워져 떠내려오는 청산을 사랑한다오
조선후기 김병연(金炳淵)이 지었다는 칠언절구(七言絶句) 한시(漢詩)다.
김병연은 1807년(순조7)에 태어나서 1863년(철종14)에 57세의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김병연은 삿갓을 쓰고 지팡이에 의지한 채 이 고장 저 마을을 바람처럼 떠돌며 날카로운 풍자로 상류층을 희롱하고 재치와 익살로 민초들의 삶을 시로 옮겼다고 한다. 그는 본명인 '김병연'보다 '김삿갓'이라는 별호로 더 잘 알려진 천재시인이었다.
위의 시 무제(無題)는 어느 지방에서 지었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이마을 저마을에서 축객을 당한 김삿갓이 터덜터덜 길을 걷자니 저 멀리 불빛이 보였다. '옳다 살았구나! 저마을에 들려 밥 한끼 얻어먹어야겠구나.' 그렇게 마음을 다잡은 김삿갓이 마을에 당도했다.
뉘 집 대문앞에 다가간 김삿갓이 대문을 두드렸다. 초가이지만 솟을 대문이었다. 그 집은 그날 제사가 들었다. 푸짐하게 젯밥 한 그릇을 얻어먹어려고 생각을 했었지만 나온 밥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고을 이방이라는 그집 주인은 청백리였다. 그러니 젯상이 초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젯밥과 함께 나온 독한 소주 한 사발을 마시고 마당에 피어놓은 황톳불 곁에서 김삿갓은 곯아떨어졌다.
이튿날 아침, 누군가 깨우기에 일어나보니 해는 이미 중천에 떠있었다. 조반을 청했다. 사각 소나무반에 아침상이라고 나온 것이 달랑 죽 한 그릇이었다. 시장이 반찬이었다. 게눈 감추 듯이 멀건 죽을 먹어치운 김삿갓이 하인에게 물었다. 주인되시는 분이 글을 아시냐고? 하인이 대답했다. 인근에서는 글잘하는 이방으로 소문이 자자하다고.
김삿갓은 지필묵을 청했다.
그래서 세상에 선을 보인 시가 '無題'라고 한다.
김삿갓은 풍자시의 대가(大家)였다.
그의 시 대부분이 풍자시였다. 그러나 위의 시 '無題'는 서정시다. 그가 지은 시 중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빼어난 수작(秀作)이라고 한다.
조선 후기 끝 없는 안동김씨의 전횡으로 이땅은 피폐(疲斃)될 대로 피폐되었다. 안동김씨의 독선으로 민초들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시대는 '김삿갓' 이라는 시선(詩仙)을 낳았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