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마을을 가는 초입에 목고개가 있다.
목고개는 가마타고 시집가던 색시가 가마가 굴러 고개 아래로 떨어지는 바람에 목이 부러져 죽었다는 애잔한 전설이 깃들어 있는 고개다.
어릴적, 비오는 날이거나 밤이 되어 어둑어둑해지면 목고개 마루에는 도깨비가 나타나곤 했다.
도깨비는 농암장, 가은장에 갔다가 몇 잔 술에 취해서 콧노래 흥얼거리며 고개를 넘는 장꾼에게 시비를 걸곤 했다. 도깨비는 요술방망이를 거머 쥐지도 않았고 머리에는 뿔도 달리지 않았다. 도깨비는 무명바지저고리에 두루마기를 입고 나타날 때가 많았다.
흔히 도깨비는 머리에 뿔이 달리고, 입은 주욱 찢어지고, 가시가 박힌 그런 요술방망이를 들고 다닌다고 사람들은 기억을 하고 있다. 우리의 기억속에 도사리고 있는 도깨비는 조선의 도깨비가 아니다. 일본사람들이 우리의 머리속에 심어 놓은 일본도깨비이다.
내가 목고개 마루에서 맨처음 도깨비와 맞닥뜨린 것은 초등학교3학년때였다. 비오는 날이었다. 아랫마을 성밑동네에서 꽁치를 사가지고 목고개 마루에 올라설 때였다. 불쑥 도깨비가 나타났다. 도깨비는 지게를 지고 있었다. 지게목발이 위로, 지게뿔이 아래로 향하게 그렇게 지게를 거꾸로 지고 있었다. 산발을 한 머리와 입고 있는 바지저고리는 비에 축축히 젖어 있었다.
그런 꼴불견인 도깨비는 신작로 한복판에 잔뜩 버티고 서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혼비백산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돌아왔는지도 모른다.
목고개에 나타나던 도깨비는 어눌했다. 똑똑했다면 체면 구겨 가면서 초등학교3학년인 어린 아이 앞에 나타날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해타산, 손익계산이 빽빽하게 휘돌아치는 세상살이를 하다 보면 그 옛날 목고개 마루에 나타나던 도깨비가 그리워진다. 씨름꾼 성너머 마을 용궁어른에게 씨름하자고 덤비다가 왼배기지에 거꾸러 처벅힌 뒤 허겁지겁 달아나 버렸다는 도깨비 '벌코'를 떠올리며 객적은 미소 한번 흘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