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이야기

목고개 목고개는 왠 고갠가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6. 1. 11. 10:29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나았네에에

아리 아리랑 고개고개로 날 넘겨 주우소오

 

문경댁이 선창을 하면 남편 김기문이 뒤 구(句)를 받는다.

 

목고개에 목고개는 왜엔 고오개엔가아아

구부야 구부야아아 눈물이이 나안다아

 

 문경댁 내외는 아리랑을 부르며 목고개 마루에서 덩실덩실 춤을 춘다. 문경댁의 춤사위는 봄바람에 수양버들 실가지가 하늘거리듯 유려했다.

 돌아가신 문경댁의 선친, 상주어른은 태껸의 달인이었다. 태껸의 품밟기는 하나의 춤사위였다. 몸을 앞 뒤 좌우로 달빛 흐르듯이 흔들어 대며 품을 밟는 태껸은 촌수로 치면 춤과 사촌쯤 될 것이다. 춤사위에 무예를 접목시킨 것이 태껸이기 때문이다. 그 아버지에 그 딸이었다.부친의 피를 이어받은 문경댁은 타고난 춤꾼이었다.

 

열라느은 콩팥은 왜 아니 열고오오

아주까리 동오옹박은 왜에 여느은가아아

 

아리아리라앙 쓰리쓰리라앙

아라리가 나았네에에

목고개 고개고개로오

나를 넘겨주우소오오

 

 언년이가 새남편 김기문에게 개가를 하던 그 이듬해, 김기문은 고향땅의 전지를 다 정리하고 사촌이 살고 있었던 충북 괴산, 장연면으로 이사를 했다.경상도 문경지방에 비해 상대적으로 땅값이 싼 그곳에 가면 더 많은 농지를 구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재수 없는 사람은, 운수가 사나운 사람은, 접시 물에 빠져도 죽는다고 했다. 김기문이 이사 가던 날, 이삿짐을 실은 트럭은 목고개를 넘고 문경새재를 넘어 연풍으로 들어섰다. 연풍을 지난 트럭은 30여분 후에 태성에서 강 건너 마을 담바우에 닿았다. 터닦고 등기대고 살아가야할 새 동네였다.

 새 동네, 새집에, 도착해 보니 없었다. 트럭에 실은 이불보퉁이가 없었다. 청천벽력이었다. 이불보퉁이는 새재 굽이길 그 어더메에 떨어졌던 모양이었다. 이불보퉁이 안에는 전지 팔아서 묶어놓은 그 귀중한 돈다발이 들어있었다.

 

 빈털털이가 되어버린 언년이 내외는 알몸이었다. 살길이 막막했다.

 난관을 극복하는 길은 한 길 밖에 없었다. 몸을 도끼삼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수, 묘수는 그 길 밖에 없었다. 그 길은 선택이 아닌 필연의 길이었다. 마을아낙네들은 언년이에게 '문경댁'이라는 택호(宅號)를 붙여주었다.

 

 그로부터 17년의 세월이 흘렀다.문경댁 내외는 딸 아들 오남매를 하나 같이 깜부기 없이 잘 키웠다. 없는 살림에 많이 가르치진 못했지만 아이들을 문맹을 만들지는 않았다. 위로 남매는 초등학교밖에 못 시켰지만 아래 삼남매는 모두 중학은 시켰다.

 

 친정 오라버니 환갑잔치 먹으려왔다 돌아가는 길에 버스를 기다리는 것이 무료해서 목고개 마루에서 춤판을 벌려본 문경댁 내외였다. 집 나올 때 마셔버린 막걸리 한 사발에 취기가 오른 문경댁 내외였다.

 

목고개에 고개고개느은 왜엔 고갠가아아

구부야아 구부야아아 눈물이이 나안다아아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라앙 아라리가 나았네에에

목고개에 고개고개로오 나알 넘겨주우소오오

 

 문경댁 내외가 불렀던 아리랑은 진도아리랑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강원도아리랑도 아니었다. 리듬이 빠른 밀양아리랑은 더구나 아니었다. 하기야 조선땅 그 어디엔들 아리랑의 혼이 배어있지 않은 땅이 있으리오. 이름만 붙이고 가락만 불어넣으면 그 땅의 아리랑이 되려니.

 문경댁 내외가 열창을 한 아리랑은 이 땅의 모든 아리랑의 가락이 녹아든 듯한 격이 높은 아리랑이었다.

 그날, 문경댁 내외가 목고개 마루에서 불러대었던 아리랑은 목고개, 목고개아리라이었다.(끝)

                                       "문경아제의 단편, '목고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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