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야기

아이들/문경아제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20. 12. 11. 15:35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별에 별 녀석이 있습니다.
우리 집 막둥이는 어릴 적 아명(兒名)이 곰돌이었습니다.

꽃동산 뒷동네에 살 때 곰돌이는 못 말리는 개구쟁이였습니다.
"퐁당퐁당!" 하는 소리가 듣기 좋았는지 곰돌인 숟가락이고 뭐고

손에 잡히는 데로 하수도 구멍으로 집어넣었습니다.
녀석은 앞집에 사는 또래 동무인 경진이와 함께 꽃동산 로터리 앞에 나가

춤추기 일쑤였습니다.
"곰돌이캉 경진이캉 꽃동산 로터리에 앞에서 춤추고 있니대이. 끄잡고 올라해도

날다람쥐 맨치로 얼마나 약빠른지 당최 잡을 수가 있어야지."
골목 맞은편에 살고 계시는 할머니가 그렇게 일러준 게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해 여름이었습니다.

한정 다리 밑에 이웃들과 함께 소풍가서였습니다.

잘 놀고 있는 영일이를 우리 집 막내 곰돌이가 집적거렸습니다

"엄마, 내가 저 자식 이길 수 있어!"

녀석은 형이 다니는 태권도장에 몇 번 들락거린지라, 되지도 않는 발차기로 영일이를 몰아붙였습니다.

한 살 더 먹은 영일이가 가만히 앉아서 당할 리가 없지요.

두 놈은 제대로 얼렸습니다. 그리곤 동시에 주먹을 날렸습니다.

영일이가 내지른 주먹에 곰돌이는 눈두덩을 맞았고, 곰돌이 주먹에 영일인 코를 정통으로 얻어맞았지요.

곰돌인 눈두덩이 부어올랐고 코를 정통으로 맞은 영일이는 주르르 코피를 흘렸습니다.

아이들 싸움은 코피가 나면 판막음이 되지요.

"엄마, 엄마. 내가 이겼어. 내가 저자식 이겼어!"

상대를 때려눕혀 동양챔피언이라도 된 권투선수처럼 곰돌인 소리를 깩깩! 지르며 지 엄마에게로 달려갔습니다.

곰돌이가 어느새 마흔다섯이 되었습니다.

우리 내외도 일흔을 넘긴 지 이미 오래입니다.

세월이 공(空)으로만 흐르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지금도 소리치고 잘 사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옛날보다는 한결 나아졌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했을 때, 여유가 닿지 않아 젖 떨어진 막내 곰돌이에게만 야쿠르트 한 개를 먹였습니다.

막내는 다섯 살 될 때까지 젖을 먹었으니 참 오래도 먹었지요. 네 살 때쯤 젖을 떼려고 시도를 해보았지만

아이가 울고불고 생난리를 피워대는 바람에 아이 생병 날까 봐 집사람은 포기를 했습니다.

야쿠르트를 먹는 막내를 볼 때마다 다섯 살짜리 딸아인 끌떡거렸습니다.

'끌떡 거린다.'는 '보채다.'의 경상도 문경 지방 사투리랍니다.

어쩌다 병아리 눈물만큼이라도 얻어걸리면 딸아인,

"애기도 마이 먹고, 나도 마이 먹고."라며 종알댔습니다.

조그만 야쿠트트 한 개를 둘이서 먹을 게 뭐가 있다고요.ㅎㅎㅎ

어렵게 산 시절이었지만, 그 시절이 눈물겹게 그리울 때도 있답니다.

사람도, 인심도 지금보단 순수했던 그 시절이요.

 

 

딸아인 아비인 나를 닮아서일까 한 성질 했습니다.

휴천동 성당 앞에 있는 시범주택에 전세(專貰) 살 때였습니다.

안집에 딸아이와 네 살짜리 동갑내기 사내아이가 있었습니다. 녀석은 사내아이라 좀 짓궂었습니다.

걸핏하면 우리 딸아일 집적거렸습니다. "야, 기 지봐야." 하며, "쿡!"쥐어박곤 했지요. 뒤로 물러설 우리 딸아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쇠 새끼야!"라며 대들었지요. 녀석은 땀을 뻘뻘 흘리며 우리 딸아일 실큰 못 두드려서 안달을 했습니다.

아무리 귀한 내 새끼라지만 잘잘못을 가려주고 자기네 아들내미를,

"그러면 안 된다. 사이좋게 놀아야지."라고 타이르면 얼마나 좋았을까마는 주인아주머니는 그러질 않았답니다.

그러기는 고사하고 되레, "상우야, 상우야! 이 더운 날, 더위 먹을라고 니가 왜 이러니."하고 안쓰러워했습니다.

그래도 그 집에서 삼 년을 살았습니다. 그 집에서 이사 나오면 죽는 줄만 알았거던요.

나도 집사람도, 참으로 순수하고 세상 물정모를 때였습니다. 삼 년을 살다가 그 집에서 이사를 나왔습니다.

꽃동산 뒷 동네로요.

막상 이사를 나오고 보니 이건 완전 내 세상이었습니다.

왜냐고요. 걸리적거리는 게 없었으니까요. 안방 사는 나보다 두어 살 더 들은 그 집 내외도 자기 집이 아니었거든요.

그러니, "감 놔라 대추 놔라!" 할 입장이 못되었거던요.(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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