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일흔을 훌쩍 넘기고부터 집중력도, 기억력도 점점 떨어져만 갔다. 아침에 무엇을 먹었는지, 한참 동안 머리를 짜내어야 생각날 때도 있었다.
내 얘길 듣고 양평 글쟁이 강남 달이 이랬다. "문경아 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우. 그러니 너무 심려치 마시구려. 동갑내기 강남 달도 그러하다오. 신의 섭리를 우리 인간이 어쩐단 말 이우?"
동갑내기 양평 글쟁이 강남 달은 블로그에서 만난 글친이다.
강남 달은 내 글방에 들리면 종달새처럼 조잘대다 가곤 했다.
그렇게 쾌활했던 강남 달이 옆지기를 여의고나더니 정말 달라졌다. 자신은 아니라지만 이 세상 온갖 서글픔과 외로움을 다 짊어지고 살아가는 듯 보였다.
우리 집사람은 심장이 안 좋다. 자다가도 숨이 가쁘다고 한다. 그럴 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언젠가 그런 아내의 모습을 시(詩)에 담았더니, "아제 심정 다 아우. 강남 달 옆지기도 그렇다오. 그러니 타고난 팔자라 생각하고 맘 편히 잡수 시우. 산다는 건, 다 그런 거 아니우." 라며 위로의 말을 던지든 강남 달이었다.
내일 밤 강남 달 블로그 방문해서 방명록 남기고 와야겠다.
오늘 낮에 비망록 한 권 만들었다.
앉은뱅이책상 앞 벽에 빼곡히 적어놓은 메모가 보기 싫다고 집사람이 입버릇처럼 잔소릴 늘어놓기 때문이다. 앞으론 벽에 적지 말고 비망록에 곧바로 올려야겠다. 그러면 내 귀도 좀 편안해질 것이다.
저녁때 홈마트에 들려 10kg쌀한 포대와 라면 다섯 봉, 번개시장 떡집에 들려 콩고물 떡 세 쪽을 사 가지고 왔다.
허리와 목디스크 수술을 받은 집사람은 쌀 두 됫박도 들지 못한다. 그 잡다한 일들도 내 몫으로 떨어진 지 이미 오래다.
집사람이 건강했었을 땐 마트에 들려 장보 기하고 식당에 가 저녁 먹고, 자전거 짐바리에 집사람 태우고 돌아오는 길은 참으로 즐거웠다.
세상 살인 형편껏 하는 것, 삶이란 신께서 주신 팔자대로 하는 것, 벗어나면 탈이 생기는 법이다.
그러니 남은 여생 집사람 다독이며, 때론 티격태격 쌈도 하며 살아갈 것이다.
맑은 바람소리 들으며, 파란 하늘에 뭉실뭉실 피어오른 하얀 뭉게구름 올려다보며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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