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화회마을 낙동강변에 서있는 부용대(芙蓉臺)다.
1592년 임진란이 일어나자 나라의 방비를 소홀히 했던 조선은 존립이 풍전등화 같았다.
그 잘난 관료들은 나라가 위기에 처하던 말던 니편 네편 편가름해서 쌈박질만 해댔다.
그 중심에 윤두수가 있었다.
이순신, 정탁, 권율, 이항복, 이덕형, 등 여러 문무신들과 합세하여 나라를 구한 서애 류성룡 대감은 고향이 안동 화회마을이었다.
임진란과 정유재란, 두 번의 왜란이 할퀴고 지나 간 조선땅은 그 어드메도 성한 곳이 없었다. 여름 대홍수에 만신창이가 된 들판같았다.
류성룡 대감은 외란에 대비하라고 우리들 후손에게 징비록을 남겼다.
서애 류성룡 대감은 저 부용대를 바라보며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