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물따라

살구나무집/문경아제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9. 9. 26. 14:01

 

33년 전, 우리 집이 이골목으로 첨 이사를 왔을 땐,

저 높다란 빌딩이 있는 자리엔 나즈막힌 기와집이 있었다.

마당엔 살구나무가 한그루 서있었다. 봄이면 살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곤 했다.

해마다 단오무렵이면 노랗게 익은 살구가 주렁주렁 나뭇가지에 달려있었다.

나는 그집을 '살구나무집'이라고 불렀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언젠부턴가 살구나무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집도 헐렸다.

집이 헐린 자리엔 저 빌딩이 들어섰다.

살구나무집은 추억속의 집이 되었다.

자전거를 타고 저 빌딩앞을 지나칠때마다 살구나무집이 떠오르곤 한다.

그 옛날, 봄날 살구나무집을 지날때면 하얀 살구꽃잎이 바람에 나폴나폴 떨어지곤했다.

가족들이 나누는 얘기소리가 울밖으로 새어나오곤 했다.

자취없이 사라져간 살구나무집앞을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집들도 거리도, 사람도 참 많이 변했다.

사십대였던 내가 일흔줄을 넘겨버린 노인이 되었다.

불어오는 바람결 속에 그렇게 일흔줄을 넘어선 할아버지가 되었다.

세월 참 야속하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