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야기

우리 동네 건달들/문경아제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8. 5. 18. 19:33

 

 

 

 

 

궂은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학유정엔 나이든 동네 건달들이 소복히 모여있었다.

모두다 일흔을 넘어선 노인네들이다.

이곳을 들락거리는 노인네들은 일흔 한 두살은 신참이다.

여든쯤 되어야 고참 대우를 받는다.

그래서 1947년생 정해생 돼지띠 동갑내기 친구인 경호와 내가

가장 졸병이다.

모두 하나같이 현역에서 은퇴한지 작게는 십여 년, 많게는 이십여 년이 넘어선 노인네들이다. 질곡의 세월을 숨가쁘게 살아온 이마에 굵직굵직한 인생계급장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노인들이다.

 

오후 학유정엔 낮익은 이웃들로 빼곡했다.

안정 사는 이재경 선배, 강변2차아파트에 사는 길 선배, 학유정 지근거리에 사는 나이 여든 둘, 가장 연장자인 장 선배와 친구 경호가 고스톱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평생을 철도원으로 봉직했다는 김동섭 선배와 권후범 선배는 한축에 끼어들지 못하고 뒷편에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저쯤 떨어진 곳엔 지역의 전설적 사업가였던 윤창수 사장과 철도노조영주지회장을 역임한 김수동 선배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이따금 모습을 드러내던 문단의 대선배인 매일신문 기자 출신인 박하식 선배는 오늘따라 보이지 않았다.

모여서 소일할 곳이 있으니 그 얼마나 좋은 일이랴.

만나서 담소할 수 있는 친구와 선배가 있으니 그 얼마나 행복한 일이랴.

 

"어버지요. 엄마 혼자 있나대이. 제가 차태워 드릴께 아버지 그만 가시대이!"

 

오십이 훨씬 넘은 듯한 길 선배 아드님이 벌써 두 번째 길 선배를 데리려왔다.

노는데 정신이 팔려 길 선배가 일어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길 선배 부인께서 어젠가 다리 연골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파장시간인 여섯시도 거지반 되어가고 길 선배도 일어서고 해서 그만 판이 깨졌다. 끗발 막 오르는데, 본전찾아가는데, 일어서기가 아쉬웠다.

그래, 낼 모레를 기약하자. 그래도 오늘, 일년에 한 두번 할까말까할 오광을 하였으니 돈은 잃었어도 할 말은 있다.

빗줄기가 굵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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