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별아줌마 남간댁/문경아제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8. 2. 13. 13:10

 

 

 

 초소 앞 주황빛 가로등이 참으로 현란하다.

 저 주황빛 가로등은 일년삼백육십오일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초소 앞 마을안길을 환히 밝힌다. 주인곁을 잠시도 떨어지지 않는 우직스런 충견忠犬 같은 가로등이다. 사람같으면 그렇게 열악한 환경에선 더 이상 근무 못하겠다고, 일년에 몇 번은 파업했을 것이다.

 밤열시 퇴근하려고 자전거에 올라앉으려다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별들이 촘촘하다.

 아침이슬맞고 갓피어난 함초로운 백일홍보다 더 고운 빨간 별이,

그 옛날 고향마을, 앵두나무집 셋째 며느리 남색치마보다 더 현란한 파아란 별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다. 한 평도 안되는 조그만 화단에 오도카니 앉아있는 앙증스러운 노란 채송화 같은 아기별도 별들의 무리중에 섞여있다.

 어디선가, "엄마아!" 하고 부르는 소리 들리기에 가만히 올려다보니,

우리집 떼쟁이 막둥이 손녀딸 같이 볼따구니가 통통하게 생겨먹은 꼬맹이별이 엄마별을 부르고 있었다.

 

 "문경아제, 문경아제!"

 날 부르는 소리 하늘가 어디에선가 들려오기에 누군가 하고 올려다보았더니 빨간 별 아줌마가 내려다보며 날 부르고 있었다. 진자줏빛 치마저고리를 곱게 떨쳐입고, 쪽진 머리에 은비녀를 맵시 있게 찌른, 마흔대여섯쯤 된 듯한 별아줌마가 배시시 웃으며 날 부르며 서있었다.

 "별아줌마, 날 부러셨남요?"

 "예, 문경아제! 퇴근하시나봐요. 근데 아제, 막바로 댁으로 가시지 말고 저하고 저 아래 영주중학교 맞은편에 있는 간이주점 남간재에 들려 소주 한잔 하고가요."

 "예에? 별 아줌마가 날 어찌 알고 소주 한잔 하재요."

 "어찌 알긴요. 밤마다 내려다보고 있었으니까 알지요. 이곳 별나라에서 내려다보면 아제가 근무하고 계시는 그곳, 무지개아파트가  훤히 보이는걸요. 그러니 경비실을 들락날락하는 아제 모습을 한눈에 다 꿰고 있을 수밖에요."

 "왜요? 뭣 때문에 밤마다 그렇게 날 내려다보고 있었대요? 비쩍 마른 볼품없는 노인네를요."

 "볼품없다니요? 남의 것 안 넘보고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시는 문경아젤 누가 볼품없다고 하겠어요. 아이들 마냥 맘까지 해맑은 문경아제를요. 엊그제 밤에는 따님이 살고 있는 부영아파트 불빛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고 계시던데요. 아제의 멋스런 웃음이 좋아서 한참을 내려다 봤답니다."

 "내가 그랬었나요. 근데 우리 집사람은 그카던데요. '당신만큼 고약한 사람은 조선천지에 둘도 없다. 늙을 수록 더해간다.' 라고요.

 "설마요."

 "믿거나 말거나 별님이 알아서 하시우. 그나저나 별님, 그 높은 하늘에 계시니 잘 알것 아니우. 나, 술마시면 안되는 줄을."

 "바보같긴요. 저는 하늘나라 별아줌마잖아요. 저캉 함께 마시는 술은 열 병을 한다케도 아무 탈 없다는 걸 문경아젠 모르시남요"

 "하긴, 그러네요."


 홀에 들어서자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우릴 쳐다봤다. 그도그럴 것이 웬 비쩍 마른 볼품없는 노인네와 쪽진 머리에 은비녀를 꼽고 진자줏빛치마저고리를 곱게 떨쳐입은 달나라 항아님 같은 사십대 미모의 여인이 짝을 이뤄 들어섰기 때문이었다.

 별 아줌마의 눈부신 미모도 미모였지만 그녀의 쪽진 머리에 사람들의 시선은 더 꽂이는 듯 했다. '지금이 어느 땐데, 조선천지 그 어느 곳에 저렇게 쪽진 머리를 하고 다니는 여인이 있단 말인가!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쪽진 머리의 여인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에게 시선을 꽂았을 것이다.

 

 우린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별아줌마는 택호가 남간댁이라고 했다.

 주거니 받거니 하며 얘기꽃을 피우다보니 소주 두 병이 금세 동이 났다. 내가 반병, 나머지 병반은 술이 센듯한 별 아줌마가 마셨다. 속도 부대끼지 않았고 기분도 달달했다.

 "아제, 괜찮지요. 저캉 함께 마셔서 속이 부대끼지 않지요?"

 "예, 그러네요. 속도 부대끼지 않고 기분도 달달하네요. 나이들고부터 술이 약해졌어요. 젊을 땐, 소주 한병은 거뜬했는데 요즘은 반병도 힘들어요. 또, 고혈압에 지병이 있어서 일부러 술을 멀리 해요."

 "제가 그랬잖아요. 저캉 같이 마시는 술은 열병을 해도 괜찮다고요."

 "그케서 별 아줌마 믿고 마셨다 아입니까."

 "그래요. 절 믿으주셔서 고마워요. 아제, 우리 그만 일어나요. 아제는 집에, 저는 별나라로 올라가봐야지요. 근데 가는 길에 저 좀 태껴줘요. 왜, 겁나요, 무거울까봐! 저, 조금도 안 무거워요."

 술값 만이천 원을 지불하고 홀을 나섰다. 내가 자전거에 올라타자 그녀는 치마를 여미더니 나비가 꽃에 앉듯 자전거 뒤에 사뿐히 올라 앉았다.

 "안 무겁죠."

 "예, 쪼매도 안 무겁네요. 그 참 이상하네요."

 여우에게 홀린것만 같았다. 볼을 꼬집어 보았다. 따끔했다.

 "떨어져요. 꼭 붙잡아요."

 "예, 그를게요. 남의 자전거에 올라앉았으면 주인말을 잘 들어야겠지요. 그쵸!"

 그녀는 양팔을 들어 올려 내 허리를 껴안았다.

 이상했다. 허리를 그렇게 껴안으면 몸이 불편할 텐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떨려요? 문경아제! 제가 껴안아서 가슴이 떨리냐구요?"

 고 여우같은 별 아줌마는 어느새 내 심중을 환히 꿰뚫고 있었다. 심장이 뛰고 있었다. 심장 뛰는 소리가 쿵쾅거리며 들려왔다. '아뿔사, 들키고 말았구나.'

 시치미를 딱 잡아떼며 대꾸했다.

 "떨리긴요. 내 나이가 몇인데요."

 "안 떨려요. 심장뛰는 소리가 쿵쾅거리고 들리는데 안 떨려요. 요런 거짓말쟁이, 어디 한 번 맞아봐요. 자존심 상하게 한 댓가예요."

 별아줌마 남간댁은 고, 조그만 주먹으로 내등짝을 "콩!" 소리가 들리도록 두드려댔다. 아프다기보다는 달짝지근했다.

 "아파요, 때리지 말아요."

 "그럼 아프라고 때렸지 곱다고 때린 줄 아세요. 거짓말 마요. 안 아프고 달짝지근하다면서요. 그래요, 때려서 죄송해요. 그치만 아제 심장뛰는 소릴 들으니 저도 좋네요. 그래도 감정조절 할게요."

 곱게 흘겨대는 남간댁의 눈이 보이는 듯 했다.

 남산초등학교 맞은 편 큰길 앞에 도착하자 나도 남간댁도 자전거에서 내렸다.

 

 "문경아제, 노래 한곡 불러봐요."

 횡단보도를 건너서자 남간댁이 뜬금없이 노래를 불러보라고 했다.

 "노래요?"

 "얘, 노래요. 문경아제, 노래 잘 부르는 거 알걸랑요."

 "별아줌마가 어째 안다요? 내가 노래부르는 걸."

 "밤에 초소에 쭈그려 앉아 나홀로 노래부르는 걸 봤다 아입니까. 노래실력이 만만찮던데요.그라이 한곡 불러봐요. 뜸 들이지 말고. "

 "다 봤다니까 하는 말인데, 무슨 노래를 부를까요? 지정곡을 정해 주시소. 그라고 듣고 나서 못 불렀다고 타박은 마시세이."

 "알았어요. 미남 배우 최무룡이 부른 '외나무다리' 어디 한번 불러봐요. 하나 두울 세엣 네엣."

 

복사꽃 능금꽃이 피는 내고향

만나면 즐거웁던 외나무다리

 

 자전거는 어느새 남산초등학교 앞을 지나 궁전아파트를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운 내사랑은 지금은 어디

새파란 가슴속에 간직한 꿈을


 자전거가 지하보도 굴다리 앞에 다다랐다. 중앙선복선공사로 굴다리 앞 인도는 어슬프기 그지없다.

 눈치빠른 별아줌마 남간댁이 자전거에서 내린다. 비탈길 내리막길을 자전거를 끌고 천천히 내려간다. 내리막길을 내려서고 평평한 보도를 지난 자전거는 오르막길을 올라간다.

 "밀께요!"

 '에그, 저런!'

 그 고운 진자줏빛 치맛자락이 자르르 콘크리트바닥에 끌리고 있었다.

 남간댁은 자르르 끌리는 진자줏빛치마자락 만큼이나 맘이 고운 별나라 여인이었다.

 자전거를 뒤에서 밀어주자 올라가기가 훨씬 수월했다.

 올해로 13년째를 이 길, 굴다리를 건너다녔지만 힘들다고 뒤에서 자전거를 밀어주는 사람은 여태껏 한 사람도 없었다.

별아줌마, 남간댁뿐이었다.

 "고맙수, 남간댁! 덕분에 힘들이지 않고 쉽게 올라왔구려."

 "고맙긴요." 남간댁은 생긋 웃었다. 생긋 웃는 엷은 미소가 햇살처럼 맑고 고왔다. 그 옛날 우리 집 좁다란 화단에 피어난 빨간 봉숭아 꽃잎처럼 곱고 예뻤다.

 오르막길을 올라선 자전거는 벨리나 웨딩홀 앞을 지나간다.


 '벨리나 웨딩홀'은 작년까지만 해도 대화예식장이라고 불렀다. 그랬던 대화예식장이 작년 봄 어느 날 '벨리나 웨딩홀'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그렇게 간판이 바뀌자 어느 글쟁이가 벨리나 웨딩홀 국 사장에게 물어보았다고 했다. '대화예식장' 인 우리말 간판을 내리고 왜 양코백이 간판으로 바꿔달았느냐고.

 그 글쟁이는 국 사장이 이렇게 대답하더라고 전했다.

 "여보시오, 선비양반! 남 속 터지는 소리 하지마소. 지금이 어느 세상인데, 우리말 우리글이 통할 것 같소. 요즘 같이 국제환가 뭔가 하는 시대엔 간판도 그저 물 건너온 국제어國際語인 영어로 휘갈겨 써야 품격 있어 보이고 장사도 잘되는 법이라오."


못잊을 세월속에 날려보내리


 노래가 판막음이 나버렸다.

 저쯤에 꽃동산이 보인다. 꽃동산의 야경은 언제 보아도 현란하다. 

 "문경아제, 저 꽃동산 앞에 절 내려줘요. 꽃동산은 1974년 5월에 남부초등학교 4학년2반 담임이었던 신명희 선생님과 반아이들, 문경아제가 합세하여 만드셨다고 하셨잖아요. 아제는 꽃동산을 친구처럼, 자식처럼, 사랑한다고 하셨지요. 그래서 저도 꽃동산이 좋답니다. 왜냐구요? 아제가 좋아하니까 저도 좋아할 수 밖에요. 꽃동산 한 바퀴 빙 둘러보고 별나라로 올라갈게요. 오늘, 고맙고 즐거웠어요. 우리 담에 또 만나요. 네, 문경아제!"

 자전거가 꽃동산에 도착했다.

 뒤를 돌아다보았더니 별아줌마 남간댁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어르신 일어나셔야지요. 댁에 가셔야지요!"

 누군가 두드려 깨우는 소리에 부스스 잠을 깼다. 소주 네댓잔에 취해 깜빡 졸았던 모양이었다.

 

 퇴근길, 꽃동산에 다다러자 소주 한 잔 생각이 났다. 오랫동안 절제해온 술이었다. 그랬지만 어쩐 일인지 오늘밤엔 술생각이 간절했다. 그것은 밤하늘을 수놓은 무수한 별님들 탓이었다. 그 곱디고운 별님들이, 마구 뿜어대는 주체 못할 고운 빛이 나를 술의 유혹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그 중심에 별 아줌마 남간댁이 있었다.

 별빛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꽃동산로터리 부근에 있는 포장마차 '꽃동산'에 들려 소수 네댓잔을 한 게 죄라면 죄였다.


 꿈이었다. 포근한 봄밤의 황홀한 꿈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하늘엔  빨간 여왕별이 그녀의 분신같은 곱디고운 빨간 별빛을 아낌없이 지상으로 쏟아붓고 있었다. 

 꿈속에서 만난 여인, 별아줌마 남간댁은 찰나刹那 같이 이루어진 우정의 보답을 자신의 분신인 별빛으로 갚고 있었다.

 '남간댁, 별 아줌마 고맙수! 비록, 찰나같이 지나간 짧은 시간이었지만 볼품없는 노인네의 멋드러진 정인情人이 되어주셔서 정말 고맙수.'

 서로가 서로에게 고마워한다면 세상은 한결 더 아름다워질 것이라고 누군가가 말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