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물따라

추억의 흑백사진.1/문경아제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7. 12. 15. 11:50

 

 

1968년 4월 초, 입대를 앞두고 찍은 사진은 듯.

 

뒤에 있는 건물은 가은 천주교회 성유 공소이다. 공소는 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천주교 집회 장소를 일컫는 말이다.

 

저 공소는 1961년도에 세워졌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는 아주 가난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한 나라였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어느 한 분야도 후진성을 면하지 못했다. 특히 정치는 불안정이 도를 넘어섰다. 자유당 정권의 독재와 부정, 부패로 인해 연일 데모가 일어났다.

 

학생들이 주축이 된 1960년 4월에 일어난 4.19 데모는 급기야 자유당정권을 무너뜨렸다. 민주당 정권이 들어섰지만 그 밥에 그 나물이었다. 자기네들끼리 싸움만 해댔지 무능했다. 요즘의 정치판을 보는 것 같았다.

 

1961년 5월16일, 군인들은 혁명을 일으켰다. 그 중심에 육군 소장 박정희가 있었다.

 

가은천주교회는 그 시절에 지어졌다.

 

교회도 가난했으니 교구청에서 공소를 지어줄 만한 능력이 없었다.

 

독일에서 시멘트, 유리, 함석, 나무, 심지어 못까지 공수해 와서 저 공소를 지었다. 가은 천주교 성유 공소는 독일의 원조에 의해 그렇게 지어졌다.

 

가은천주교 주임신부는 지 신부님이셨다. 지 신부님은 멀리 독일에서 오셨다.

 

신부님은, "타타 타타!" 소리도 요란하게 뽀얗게 먼지를 일으키며 까만 오토바이를 타고 성유 공소에 오시곤 하셨다.

 

"여러뿌운, 우유 까루도 믿지 말꼬 밀까루도 믿지 말꼬 빤드시 천주교회를 믿어야 합네다!"

 

신부님은 강론 때마다 그렇게 말씀하셨다. 동네 꼬맹이들은 신부님의 어눌한 말을 흉내 내며 골목길을 뛰어다니곤 했다.

 

 

 

저 파릇파릇한 총각과 아가씨들이 세월에 등 떠밀려, 영숙이 아지매만 빼놓고 모두 일흔을 넘어섰다.

 

가는 세월 그 누구가 잡을 수가 있으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