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물따라

문화재탐방기/문경아제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7. 8. 21. 12:43

 

 

 

 

 

 

 

 

 

 

지난 말복이었다. 늦은 아침을 먹고나서 할일없이 누워서 멀뚱멀뚱 천정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폰이 울렸다. 누군가하고 뚜껑을 열어보니 친구, 경준이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뭐하노?"

"그냥 누워있다.왜?"

"그카만 안된다. 오늘이 말복인데 안동내려가서 매운탕 먹고 복땜하자."

"운전은?"

"화원하는 박순홍씨가 같이 가기로 했다."

 

그 친구와 나는 소도 개도 있다는 그 흔해빠진 자동차운전면허가 없다. 일테면 우리 둘이는 문화재급사람들이다.

젊은 시절부터 오른쪽 다리에 심하게 쥐가 나는 나는 그래서 면허를 따지 않았다. 평생을 철도원으로 근무한 그 친구는 강직성척추병으로 면허를 낼 수가 없었다. 젊은날 근무하다 달리는 열차에서 떨어져 그 친구는 그렇게 되었다고한다.

그런 연유로 우리는 그 불명예스러운 문화재급 인사가 되고 말았다.

안동댐 상류, 동막골에 도착하니 열한 시가 조금 넘었다. 나와는 달리 아침을 일찍 먹었다는 두 친구는 배가 고프다고 했다. 그러니 어쩌랴! 복땜하러 안동에 내려왔으니 매운탕먹고 땀흘려가며 액땜을 해야하지 않겠는가!

매운탕 맛은 어딜가나 매일반이다. 잡고기매운탕이 아닌 양식메기매운탕은 그 어느집엘 간들 그맛이 그맛이다.

 

차는 높다란 중앙선 철교밑을 지나가고 있었다.

경준이친구가 말했다.

 

"알제강점기때, 저 철교가 세워질 당시만해도 국내에서 젤 높은 철교였다네."

 

차는 시내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차창너머로 '안동신세동7층전탑'이 보였다. 탑 뒤로 고색창연한 고택, 임청각도 보였다. 임청각 뒷산을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경준이 친구가 또 입을 열었다.

 

"어릴 때, 저 임청각 뒷산에서 놀고 있었는데 불장난을 하다가 친구가 산불을 냈다아이가. 근데 그 자식이 경준이가 산불냈다고 덮어씌우는 바람에 어메에게 늘씬하게 두들겨 맞았다 아이가. 망할 노무 자식, 불은 지가 질러놓고!"

 

아버지가 철도공무원이셨던 경준이는 어린 시절을 안동에서 보냈다고했다.

길가 공터에 차를 세워놓고 우리 일행은 탑을 향해 걸어갔다.

저 신세동7층전탑은 1962년 12월에 국보16호로 지정되었다. 탑의 보존은 국보16에 걸멎지 않게 허술해보였다. 시멘트를 발라놓은 탑의 기단부분은 국보16호라는 품격과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전문가가 아닌 내눈에는 그렇게 보였다는 것이다.

신세동7층전탑은 일명 '법흥탑' 이라고도 불린다. 세워졌을 당시에는 법흥사 경내의 부속탑이었을 것이다.

탑 바로 옆이 중앙선 철길이라 열차가 지나갈때면 진동도 심할 것이다. 이젠, 어디 맞춤한 곳으로 이설도 심각하게 고려해 보아야할 것이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소중한 문화유산이 훼손되어 가는 게 안쓰러워 하는 말이다.

탑을 둘러본 뒤 임청각으로 발길을 돌렸다.

임청각!

아흔아홉간 고택, 임청각은 일제강점기때 훼손되어 지금은 일흔여 간만 남았다고한다.

 

국내에서 가장 큰 살림집인 임청각은 상해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이다. 선생은 관향이 고성이다.

임청각은 약 500여 년 전, 조선조 중종때 형조좌랑을 지낸 이증의 셋째아들 이명이 지은 별당형 정자이다.1591년 조선중기 기묘년에 세워졌다고 전해온다.

임청각의 현판은 퇴계 이황의 친필이라고 전해지며 1963년1월21일 보물182호로 지정되었다. 임청각의 당호는 도연명의 귀거래사 싯구에서 따왔다고 한다.

1942년 일제는 중앙선철도를 놓는다는 이유를 구실로 독립운동가를 아홉 분이나 배출한 안동의 정기를 끊고자 임청각의 가장 중요한 건물인 군자정을 없애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안동군수의 간곡한 부탁을 받아드려 간신히 부속건물과 마당으로 철도가 부설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물려받은 문화유산 중에는 선조들의 눈물겨운 고충이 스려있는 문화재도 있다는 사실을 그대와 나는 알아야 할 것이다.

안동에 살고있는 나보다 나이 다섯 살 더 먹은 직형이 형은 고성 이씨다. 형은 임청각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석주 선생처럼 직형이형도 임청각이 생가인 셈이다. 직형이형이 태어났을 때,임청각에 살고 계셨던 석주 선생은 크다란 대장각 미역 한 오리와 쇠고기 두어 근을 전해주며 형의 탄생을 축하해 주셨다고 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값진 문화유산이, 이런저런 삶의 얘기가 녹아있는 임청각 같은 고택이 훼손되지 않고 오래오래 보전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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