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1소총 1000인치 사격을 끝낸 훈병들에게 10분간 휴식이 주어졌다. 훈병들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꿀맛같은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담배 한 발 장진!"
조교의 장난끼 어린 구령이 떨어지자 훈병들은 일제히 담배에 불을 붙여 입에 물었다. 파란 담배연기가 허공에 흩어졌다. 담배를 안 피우는 훈병은 드롭프스 한 알을 입안에 털어넣었다.
두고 온 고향산천을, 부모님을, 여친을 떠올리는 훈병들의 눈망울이 하늘가를 오락가락했다.
"휴식 끝. 사총풀어!" 조교의 구령이 떨어지자 훈병들은 네 정씩 묶어서 세워놓은 사총을 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탕" 하고 총소리가 들렸다.
"윽, 윽!" 외마디 비명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총을 맞은 훈병 두 명이 퍽퍽 쓰러졌다.
누군가 어느 멍청한 훈병이 총기 오발사고를 일으킨 모양이었다. 군대생활을 경험해본 대한민국 남자라면 알 것이다. 사선의 군기가 얼마나 엄격한가를.
"사격이 끝난 사수는 자물쇠를 잠궈고 노리쇠를 후퇴시키고 약실 검사." 사격을 끝낸 훈병들은 조교의 구령에 따라 일제히 약실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이상유무를 확인했다. 약실에 실탄이 남아있지 않으면 손을 들어 "이상무!"하고 복창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선을 내려오면 어깨에 총을 올려 격발을 시켜보곤 했다. 그랬었는데도 고문관같은 전우의 총에 두명의 전우가 쓰러진 것이었다.
먼저 맞은 훈병은 총알이 엉덩이에서 복부로 관통했다. 그 다음 훈병은 총알이 등에서 가슴으로 관통했다. 먼저 맞은 훈병은 후송된지 삼일만에 절명했고 나중에 맞은 훈병은 그자리에서 청춘의 생을 접고 말았다.
우리는 그렇게 두 명의 전우를 하늘나라로 보내야만 했다. 두 명의 전우 중 한 명은 입영열차를 함께 타고 입대한 고향이 상주인 김정용이었다. 그날, 교육은 그대로 끝이 났다. 중대장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중대장은 곧바로 헌병대로 연행되어 갔다.
두 명의 전우를 잃어버린 우리는 그날밤 목놓아 울었다. 내무반은 울음바다로 변했다.
그로부터 48년이 지나갔다. 살아 있었다면 이제 막 일흔줄에 접어들었을 빙그레 웃던 모습이 참 멋져 보였던 정용이를 떠올려본다. 까마득히 잊어버린 정용이를 떠올리며 그 친구의 명복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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