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밤이었다. 8시가 조금 지나서였다. 쓰레기장을 정리하다가 재정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승하 엄마를 만났다.
"아저씨, 고생하시네요. 재정이가 운전하고 왔어요. 재정이 면허증 땄어요!"
재정이는 열 아홉, 고등학교3학년이다. 훤칠한 키에 잘 생긴 학생이다. 재정이는 승하 동생이다. 아들이 대견한지 승하 엄마는 그렇게 아들자랑을 했다.
그런 승하 엄마를 보고 있자니 포항에 사는 처이질녀가 생각났다.
2004년12월 정년퇴직을 하고 이듬해 1월 초, 집사람과 함께 처이질녀집에 놀러를 갔다.
그때 처이질녀 큰 아들, 동현이는 열세 살 초등학교6학년이었다. 덩치가 좋았다. 동현이는 키가 큰 지 엄마를 불쑥불쑥 들쳐업곤 했다.
"이모, 올해부터 동현이가 날 업어!"
처이질녀는 집사람을 쳐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아들, 동현이가 대견한 듯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어느 날 점심때였었다. 아무렇게 집어던지고 간 그 많은 쓰레기를 정리하고 있었다. 일을 하다 피곤해서 파지더미에 퍼질러 앉아 쉬고 있었다. 그날 따라 웬일인지 점심시간에 승하 엄마가 보였다.
나를 본 승하 엄마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아저씨, 왜요?" 승하 엄마가 물었다.
"쉬고 있어요. 쉬엄쉬엄 쉬어가며 하려고요." 그 어느 누가 가는 세월을 막을 수 있으리오. 몸도 마음도 세월따라 흘러흘러 가는 것을.
"어디 편찮으신줄 알고 깜짝 놀랬잖아요. 아저씨!"
그렇게 얘기를 하며 승하 엄마는 가방에서 초크렛을 몇 알 꺼내더니 손에 쥐어 주었다.
"드시면 조금쯤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
"예, 잘 먹을게요. 승하 엄마!"
초크렛은 칼로리가 높아 피로에 아주 좋은 특효약이다.
꼬맹이 아이들이 어느새 듬직한 고3으로, 병원 간호사로 취업을 한 새내기 성인으로 자라났다. 삼십대 새댁들이 사십대중반에 들어섰다.
앞으로 이 일을 몇년이나 더 할런지 모르겠다.
이웃들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온 12여 년의 세월! 그 12여 년의 세월을 때로는 부닥치며, 때로는 살갑게 정을 나누며, 그렇게 살아왔다.
누군가가 말했다. "행복은 만들어 지는 것"이라고.
그래, '노년의 행복이란 욕심부리지 않고 세월따라 유유자적하게 사는 것이리라. 하루하루 그렇게 사는 것이 행복이겠지!'그렇게 궁시랑되며 빙그레 웃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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