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물따라

해공 신익희 선생을 아십니까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6. 3. 27. 16:25

우리나라 대한나라 독립을 위해

여든 평생 한결 같이 몸바쳐 오신

고마우신 리 대통령 우리 대통령

그 이름 길이길이 빛나오리다

 

초등학교4학년때 배운 대통령 찬가이다.

그당시 이승만 대통령을 국부라고 했다. 국부란 건국에 지대적인 공헌를 한 사람을 이름이다. 물론 이승만도 건국에 공헌이 많았던 민족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이국땅 미국으로 망명한 그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갖은 고생을 다했다. 그러나 그는 운이 좋은 독립투사였다. 단 한 번도 투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조국의 광복과 함께 귀국을 했고 1948년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자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독선가였던 그는 독재자의 길을 걸었고 그를 추종하는 모리배들은 대통령 찬가까지 지어 바치며 아부의 극치를 떨어 대었다. 이러니 나라꼴이 제대로 될리가 없었다. 끝없는 부정 부패가 이어졌고 민생은 도탄에 빠졌다.

1956년 5월3일 제3대 대통령 야당후보로 출마한 해공 신익희 선생의 한강백사장 유세때 30 만의 청중이 운집했다고 역사는 전했다.

그러나 하늘은 독재자 이승만의 유일한 대항마였던 신익희 선생을 데려가고 말았다. 해공 산익희 선생은 5월4일 호남지방으로 선거유세를 하러 가던 중 호남선 열차안에서 삼장마비로 급서했기 때문이었다.

 

목이 매인 이별가를 불러야 옳으냐

돌아서서 피눈물울 흘러야 옳으냐

사랑이란 이런가요 비나리는 호남선에

헤어지던 그 인사가 야속도 하더란다

 

자유당 정부는 그당시 급물살을 타고 유행하던 '비나리는 호남선' 을 금지곡으로 묶어버렸다. 명분이야 지나치게 한을 부각한 노래였다는 것이었지만 해공 신익희에 대한 추모의 뜻이 노래속에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 실질적 이유였다.

해공 산익희. 그는 국민들이 진정 맘속으로 존경하던 지도자였다.

벌써 60년이 흘러버린 까마득한 옛 얘기이다.

해공 산악희! 그분은 아직도 그를 아는 사람들의 가슴에 추억으로 남아있다. 삶이 힘든 사람들의 가슴 한켠에 머무르며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주며 아름다운 모습되어 그렇게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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