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신부님은 까만 오토바이를 타고 우리 동네에 있는 공소에 오셨습니다.
공소는 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천주교 집회장소입니다.
지 신부님은 눈이 파란 외국인이었습니다. 독일이 고국이라고 하셨습니다.
신부님은 이렇게 강론하셨습니다.
"교우 여러뿐, 밀까루도 믿찌말꼬 우윳까루도 믿찌말꼬 빤듯이 천주교회를 믿으야 합네따!"
한국전쟁이 휴전된지 사오년 지난 1950년대 후반, 그 당시의 대한민국은 지구상의 최빈국이었습니다.
나라의 경제가 구미(歐美) 선진국의 원조에 의해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원조는 구미 여러나라의 정부에 의해 주도되었지만 성당이나 교회를 통해서 들어오는 민간원조도 만만찮았습니다.
밀가루나 우윳가루 같은 구호품을 받으려고 성당이나 교회에 나가는 얼치기 신자들도 꽤나 많았던 시절이었습니다.
파란 삼월 하늘 올려다보며 신부님 얼굴을 그려봅니다.
파란 눈을, 커다란 코를, 입가의 미소를, 얼굴을 가득 덮은 누르스럼한 털을 그려봅니다.
이 지구상 그 어느 땅에 살아계신다면 100세쯤 되셨을 파란 눈의 지 신부님을 그려봅니다.
신부님께서는 아이들을 무척 사랑하셨습니다.
"신부님, 지 신부니임! 사랑합니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외쳐대는 소리는 벽공(碧空)에 부딪혀 메아리 되어 돌아옵니다.
"신부님, 지 신부니임! 사랑합니다다다다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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