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물따라

보슬비 오는 거리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5. 11. 12. 17:47

 

보슬비 오는 거리에 추억이 젖어들어

상처난 내 가슴은 눈물 뿐인데

아~ 타바린 연기처럼 자취 없이 떠나버린

그 사람 마음은 돌아올 기약 없네

 

보슬비 오는 거리에 밤마져 잠이들어

병들은내 사랑은 한숨 뿐인데

아~ 쌓이는 시름들이 못 견디게 괴로워도

흐르는 눈물은 빗속에 하염 없네

 

1964년, 가수 성재희가 불렀던 '보슬비 오는 거리' 이다. 성재희는 이 노래를 부르고 난 뒤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성재희는 조금은 허스키하고 호소력이 있는 듯한 목소리를 지닌 매력적인 저음 가수였다.

젊은 시절 비오는 날, 라듸오에서 흘러나오는 이 노래를 들을때면 묘한 분위기에 빠져들곤 했었다.

그뒤로 이어지는 인기곡이 없었던 그녀는 일본으로 건너가 재일교포와 결혼을 했다고 전해졌다.

동료시인 중에 백명호라는 시인이 있다. 백 시인은 한 스승 밑에서 함께 시를 배우고 산문을 배웠던 일테면 동문수학을 한 동료문인인 셈이다.

영주가 객지인 내게 서슴 없이 친구로 다가온 그런 고마운 시인이었다. 백 시인은 내가 근무할때면 이따금 초소를 찾아오곤 했다.

언젠가 백 시인이 들려주었던 얘기 중에 '보슬비 오는 거리' 와 연관지어지는 애잔한 이야기 한토막을 여기에 올려본다.

백 시인은 고3 때 일년을 쉬었다고 했다. 그런데 봉화에 있는 어느 집의 부탁으로 그 집의 딸아이를 가르치게 되었단다. 일테면 가정교사로 들어앉은 셈이었다. 딸아이는 여고2학년이라고 했다. 여고2학년인 그 여학생은 공부보다는 노래하고 기타치는 것을 더 좋아하는 듯이 보였다고 했다. 그래도 기초가 되어 있고 머리가 좋았던 탓인지 성적은 쑥쑥 올라 가더라고 했다.

비오는 어느 날이었다고 했다. 그날따라 그 여고생은 성재희가 저 만큼 물러앉을 정도로 보슬비 오는 거리를 그렇게 잘 불렀다고 했다. 글쓰는 문인은 너나 할것 없이 어느 정도의 풍을 친다. 특히 전업 소설가는 그럴 덧하게 풍을 잘쳐야 작품이 잘 팔린다. 어쨌던 백 시인의 말이 그랬다.

그 여고생은 가슴 속에 백 시인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아마도그 여고생도 그 나이때면 그려보는 젊은날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가슴 한켠에 그렇게 그렸을 것이다.

어느 날, 학교에 다녀오던 그 여고생이 정미소 앞길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이제 막 아름답게 피어나는 젊디젊은 생명이 그만 밤하늘의 별이 되었다고 했다. 얘기를 하는 백 시인도, 듣는 나도 눈시울을 붉혔다. 갈비 추즐대던 한낮에 우린 그 여고생의 명복을 빌어주며 그렇게 눈시울을 붉혔다.

'길따라 물따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동산.5  (0) 2015.11.24
현대 동산타운 야경  (0) 2015.11.22
친구.2  (0) 2015.11.12
지리산 청학동과 삼성궁 탐방.2  (0) 2015.11.08
돌다리  (0) 2015.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