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물따라

친구.2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5. 11. 12. 13:50

 

가을이면 생각나는 친구가 있다. 성능제라는 친구이다.

그 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가 고등학교1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자취집에서 밭둑길을 따라 조금 떨어진 곳에 능제네 집이 있었다.

자췻집은 학교에서 족히 오 리쯤은 떨어져있었다. 쌀이라도 떨어져 집에 다녀 올때면 상주역에서 자췻집이 있는 연원동까지 끙끙대며 그 무거운 쌀푸대를 걸머지고 가야했었다.

아버지는 조용한 곳이 공부하기 좋다시며 읍내에서 오 리쯤 떨어진, 당신과 친분이 있는 능제어르신 집 옆에 자췻집을 마련해 주셨던 것이었다. 쌀푸대를 걸머지고 고역을 치를 때마다 아버지를 원망하곤 했었다. '자췻집을 이렇게 멀리 잡아주어 자식 고생시킬게 뭣이람!' 하고 말이다.

능제는 이발사였다.

어느날 자췻집을 찾아온 능제가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저 언덕배기 동네, 친구 아버지 회갑인데 놀라오라고 하니 함께 가볼래?" 라고. 얼씨구좋다 하며 저녁 때, 한방에서 자취를 함께 하던 친구랑 능제 뒤를 줄래줄래 따라갔다.

막걸리를 너무 많이 마신 것이 화근이었다. 술에 떡이된 나를 능제가 업고왔다. 술을 마실 나이는 되었다. 만학을 했던 나는 그당시 열아홉살이었다. 또래의 친구들 보다 많게는 3년 짧게는 1년 늦게 진학을 했었다. 아무리 그렇다해도 학생신분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학생은 조금쯤 잘못을 저질려도 세상은 관용을 베풀었다. 불문율 같은 것이었다. 그러고보니 나는 그 분문율의 크나큰 수혜자인 셈이었다.

또 한 번 그런일이 더 있었다. 제대를 하던 해인 1971년 가을, 능제가 우리 마을로 시집을 온 누님댁에 놀러를 왔었다. 어느 날 밤, 몇몇 친구들과 경운기를 끌고 놀러를 갔었다. 경운기가 참으로 귀하던 시절 읍내 농협에 일하던 경우는 농협경운기를 끌고 퇴근을 할 때가 있었다. 그날도 경우가 경운기를 몰고 온 날이었다.

우리는 무작정 경운기에 올라탔다. 그리곤 목적지도 없는 여행길에 나섰다. 목고개를 넘고 가실목 고개를 경운기는 넘어가고 있었다.

그날도 나는 동서남북도 구별하지 못할만큼 술을 마셔버렸다. 그랬던 나를 능제는 또 업어서 우리 집 삽짝 앞에 내려놓고 갔다.

더 늙기 전에 그 고마운 친구 한 번 만나보려고 수소문을 해보았더니 외국으로 이민을 갔단다. 가을이면 어김 없이 생각나는 그 찬구가 그렇게 먼 이국땅에 산단다.

그래, 친구야! 어디에서 살던 알콩달콩 잘 살게. 그래도가끔은 못난 나도 생각하며 젊은날 그랬던 것처럼그 빙그레 웃으가며 잘 살아가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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