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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농민전쟁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6. 10. 27. 11:34

학창시절 '갑오농민전쟁'을 '동학란'이라고 배웠다. '난'이란 일반 대중이 일어키는 폭동을 이름이다.

왜,'갑오농민전쟁'이나 '동학혁명'이라고 부르지 않고 동학란이라고 불렀을까? 해답은 간단하다. 그 당시의 거의 모든 교과서는 친일사관을 가진 학자들에 의해 집필되었기 때문이다.

갑오농민전쟁은 1894년 4월에 일어났다. 전라도 고부군수 조병갑은 한다는 탐관오리였다. 농민들로부터 만석보 수세를 가혹하게 징수했고 아버지 공덕비를 세운다며 세금아닌 세금을 강요했다.

견디다 못한 민중들은 봉기를 일으켰다. 이것이 동학혁명의 원초가 된 '고부농민 봉기'였다.

동학군이 봉기에 가세하고부터 봉기는 농민전쟁으로 확대되어 갔다. 혁명의 중심에는 '새야새야 파랑새야'라는 전설적인 민요의 주인공인 녹두장군 전봉준이 있었다.

전주를 점령한 농민군은 전라도 일대를 장악했고 세력을 충청도까지 넓혀나갔다.

이렇게 일어난 농민봉기를 역사는 갑오농민군1차봉기라고 부른다. 1차 봉기가 전통사회의 모순을 타파하기 위해 일어났다면 그 뒤에 일어난 2차봉기는 외세를 배척하기 위해 일어났다.

2차봉기는 정부군과 최신식 무기로 정예화된 일본군에 패망 무산되었다. 우금치 전투에서였다. 이때 동학 농민군의 무기는 죽창이나 농기구가 전부였다.

고종은 어떤 왕이었나? 일제에 맞서 싸운 왕, 급기야 일제에 의해 독살된 왕이라고 우리는 알고 있다. 아니다. 고종은 한양으로 압송되어 온 탐관오리 조병갑을 일시 구속시켰다가 사면, 복권시킨 기득권층을 보호한 왕이었다.

그 조병갑에 의해 전봉준은 처형되었다. 이러니 역사는 아이러니 한 것이다.

역사는 민족의 거울이라고 한다. 아무리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지만 역사는 은폐, 왜곡, 편향됨이 없이 사실 그대로 기록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거울의 역활을 제대로 할 수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