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하얀 소망/문경아제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9. 10. 30. 10:36

 

 

 

고향과 어머니 앞에서는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럴 것이다.

고등학교일학년 때였다. 1965년 늦가을 새벽이었다.

목고개에 서서 어머니와 함께 가은행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은역에 가서 기차를 타고 학교가 있는 상주에 가야하기 때문이었다.

학교가는 아들을 배웅하려고 어머니는 늦가을 추위에 당신 몸 떨어가며 아들과 함께 목고개에 서서 버스를 기다리며 그렇게 서 계셨다. 그만 들어가시라고 아무리 만류를 해도 어머니는 버스 오는 것 보고 가시겠다며 고집을 꺾지 않으셨다.

집안에 벽시계 하나도 없던 참으로 가난했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 내고향 문경 가은엔 '은성광업소'라는 나라에서 운영하는 커다란 국영탄광(國營炭鑛)이 있었다.

마을엔 탄광에 다니는 광부가 꽤 많았다. 시간맞춰 출근을 해야하는 그네들 집에는 벽시계가 걸려있었다.

그네들 집 문을 두드려 시간을 알아보면 될 일이었지만 이른 새벽에 남의 집 문 두드리는 게 송구해서 어머닌 그러질 못하셨다.

시간도 모른 채 무작정 집을 나선 어머니와 아들은 근 삽십여 분을 늦가을 새벽추위에 "덜덜덜!" 떨어가며 목고개마루에 서서 버스를 기다렸다.


호강 한 번 못하시고 고생, 고생하시던 어머니는 1990년 12월28일 소천(所天)하셨다.

나이들고부터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객적은 버릇이 생겼다.

밤하늘 파란 별이 되셨을 어머니를 찾으려고,

간난아기 때, 밤하늘 빨간 별이 되었던 땅꼬마 내 동생을 찾으려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객적은 버릇이 생겼다.

오욕에 물이 던 내눈에는 어머니별도 땅꼬마별도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