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렇게 늦가을이 다가오면 아스라이 멀어져간 추억 한 토막이 생각난다.
초등학3학년 때였다. 그시절은 너나 없이 가난했었다. 하기야 잘사는 집들도 있긴 했지만 극히 일부였었다.
늦가을이었다. 십여 리 길이 훨씬 먼 가은장을 보고 오신 어머니가 내복을 사가지고 오셨다. 한 벌도 아닌 달랑 윗도리 하나만 장보따리 속에 넣고 오셨다. 내복은 푸르스름한 색깔이었다.
이틀날 서리아침에 그 푸르스름한 내복만 입고 오릿길을 타박타박 걸어서 학교에 갔다. 흥겹게 노래부르며 그렇게 학교에 갔다.
57년 전의 까마득한 이야기다. 세상이 엄청 좋아졌다. 의식주도, 교통도, 교육환경도, 확기적으로 변화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풍요 속의 빈곤의 시대' 를 살아가고 있다.
그 옛날, 늦가을 서리아침에 달랑 내복 하나만 입고 학교에 가던 내모습을 그려보며 빙그레 웃어본다. 그래. 늘 그랬듯이 오늘도 임은 먼 곳이 아닌 가까운 곳에 있으리라. 찬란한아침이다. 김정애 시인이 늘 입버릇처럼 하는 말처럼 스마일한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