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지꽃/조지훈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6. 4. 2. 23:33

기다림에 야윈 얼굴

물 위에 비초이며

 

가녀린 매무새

홀로 돌아 앉다.

 

못견디게 향기로운

바람결에도

 

입 다물고 웃지 않는

도라지꽃아.

 

영넘어 가는 길에

임자 없는 무덤 하나

 

시름은 무거운데

주머니 비었거다

 

하늘은 마냥 높고

고목가지에

 

서리 가마귀 우지짖는

저녁 노을 속

 

나그네는 홀로 가고

별이 새로 돋는다

 

영넘어 가는 길에

산 사람의 무덤 하나

죽은 이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