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아제의 꽃이야기/문경아제
글제목을 거창하게 잡아놓고보니 난감하기 그지없다.
꽃에 대한 대단한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친구 경호처럼 꽃에 묻혀사는 사람은 더구나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타이틀을 정해놓았으니 꽃얘기를 하긴 해야겠는데,
하고 많은 꽃중에서 무슨 꽃을 어떻게 얘기할까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래,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나와 친숙한, 내가 사랑하는 세가지 꽃을 얘기하자.
세가지 꽃중에서 개화시기가 빠르고 우리가족과 함께 살아온지 32년이 된 명자꽃 이야기부터 하자.
1986년 우리 가족이 이사를 와보니 담장아래 양지 녘엔 명자꽃이 있었다.
명자꽃은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에 분포해 있으며 4~5월에 꽃이 핀다.
꽃말은 신뢰, 수줍음이다.
명자꽃을 산당화라고도 부른다. 명자꽃은 진분홍색과 연분홍색깔의 꽃이 있다. 우리 집 담장아래 터잡고 살아가는 명자꽃은 붉디붉은 진분홍빛깔이다.
글쓰는 문인들은 명자꽃을 산당화(山棠花)라고 즐겨부른다. 산당화라고 부르는 게 어감이 좋고 울림이 있기 때문이다. 글 몇 줄 쓰는 나도 그래서 명자꽃을 산당화라고 부른다.
진분홍빛 산당화는 한창 타오르는 장작불 속살처럼 붉고 곱다.
그대는 장작불의 속살을 본 적이 있는가? 감춰진 여인네의 고혹적인 속살같이 맑고 고운, 장작불의 속살을 본 적이 있는가?
오늘 매실나무를 전지하면서 산당화나무도 손질했다. 말라버린 가지와 웃자란 가지를 짤라버리니 수형이 그를듯하게 보였다. 내년엔 더 붉은 꽃이 피려니.
찔레꽃은 5월에 핀다.
찔레꽃 내음은 풋풋하다. 비슷한 시기에 피어나는 아카시아꽃냄새에 비하면 향의 강도에서 형편없이 밀린다.
아카시아꽃이 발랄하고 상큼한 스스럼 없는 아가씨라면 찔레꽃은 치렁치렁하게 따아내린 머리끝에 갑사댕기 물리고 까만 치마에 흰저고리 입은 수더분한 촌색시 같은 꽃이다.
찔레꽃의 꽃말은 '고독', '주의깊다' 이다. 찔레꽃은 산기슭과 골짜기의 양지녘이나 개울가에 피어난다.
흰색과 연분홍색 두 종류의 꽃이 있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도 연분홍빛 찔레꽃인 털찔레는 보지 못했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언덕 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자주고름 입에 물고 눈물 흘리며
이별가를 불러주던 그리운 사람아
그 옛날 이 땅,조선땅 가수, 백난아가 부른 노래 '찔레꽃'이다.
노래가사에 나오는 붉은 찔레꽃은 털찔레를 일음이다.
털찔레는 일본이 원산지라고 일본의 식물도감에 실렸다고 한다. 일본의 식물학자들은 조선반도에도 털찔레가 분포한다고 얘길 했다고한다. 하지만, '조선의 식물도감에는 실려있지 않았다'라고 했단다. 사실이라면 대한민국 식물학자들이 풀어야 할 숙제이다.
영주가 객지인 나는 10여 년전, 찔레꽃을 찾아 영주의 온 산야를 헤맨 적이 있었다. 그렇게 헤맨 끝에 청도김씨 병산공파종택 뒤, 구수산기슭에서 찔레꽃 무리를 만났을 때 그 반가움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찔레꽃은 산기슭뿐만 아니라 종택 앞에도 숲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수년 전, 산기슭 아래에는 밭주인이 밭둑을 정리하면서 자생하든 찔레나무덤불을 말끔이 베어버렸다. 또 종택 앞에도 찔레나무숲을 깨끗이 정리해 버려서 요즘은 구수산기슭에도 찔레꽃이 그저 명맥만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올봄 찔레꽃을 만나려고 구수산기슭을 찾았을 때 찔레꽃 몇 잎을 따서 질겅질겅 씹어며 내려왔다.
나보다 두살 작은 우리 앞집 분이를 생각하며 빙그레 웃으며 내려왔다. 뻐꾸기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접시꽃은 아욱과에 속하는 초본식물이다. 두해살이 풀이다.개화기는 6월에서 9월 사이다. 흰색과 자주색, 붉은 색의 세가지 꽃이 있다. 꽃말은 '풍요'와 '야망'과 '평안'이다.
흰색과 붉은 색의 접시꽃도 곱지만 난 진자주짗접시꽃을 제일 좋아한다. 가장 곱기때문이다.
1971년 3월 군에서 제대하는 해, 나는 스물다섯 이었다.
그때 한 마을에 살았던 열아홉 아가씨 희야는 초등학교 5년 후배였다.
희야는 키도 컸다. 조금쯤 성깔이 있었지만 그 나이쯤엔 이해가 되는 성정이었다. 그렇게 빼어난 미모는 아니었지만 그만하면 어디에 내놓어도 빠지지 않는 인물이었다. 머리가 좋아 주산실력도 월등했다.
그런 희야에게 난 사랑을 느꼈다.
어느 날 희야네 집을 찾아갔다. 마침 집에는 희야밖에 없었다.
희야를 살포시 안으며 말했다.
"너를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뜬금없는 사랑고백에 희야는, "오빠 때문에 울진 않았다" 며 도리질을 했다.
그날도 희야네 집 울타리 밑에는 진자줏빛접시꽃이 곱게 피어있었다.
47년이 흘러버린 까마득한 옛 얘기이다. 순수했던, 숙맥(菽麥)같았던, 젊은 날의 아름다운 사랑얘기다.
어느 덜 떨어진 아가씨가 느닷없이 사랑고백을 해오는 남자에게, "나도 오빨 사랑해요!" 라며 찰싹 안겨오겠는가.
5년 전인가 어릴 적 한 마을에 함께 살았던 둘째 생질을 만났다.
생질이 말했다. 고향마을에 살았던 희야가 카페에 올라오는 외삼촌의 글을 읽는다고.
그래, 내 블로그에 올려놓은 이글도 희야 네가 읽는다면 생긋 웃으며 읽어주렴. 얼굴 붉히지 말고. 우린 이제 뉘집 할아버지, 뉘집 할머니인 노인네 되었잖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