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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망증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6. 12. 19. 19:25
옛날 어떤 사람이 등너머에 있는 큰댁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그날은 마침 단오이었다. 요즘이야 별 볼일 없는 날로 전락해 버렸지만 옛날엔 단오는 큰 명절이었다. 오랜만에 찾아가는 큰집이었고 또한 단오명절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그 자의 등에는 쑥떡 한 고리짝이, 손에는 막걸리 한 두루미가 들려져 있었다.
큰댁 가는 길엔 조그만 도랑이 있었다. 등에 짐을 짊어지지 않았다면 팔딱 건너 뛰어도 될만한 그런 도랑이었다. 간밤에 내린 비에 도랑물은 콸콸 소리치며 기세 좋게 흐르고 있었다.
어쩔 수없이 그자는 버선을 벗어 바지춤에 집어넣고 바짓가랑이를 둥둥 걷어올리고 도랑을 건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랴. 앚어버리고 말았다. 도랑건너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가야할 목적지를.
그자는 어쩔 수없이 집으로 되돌아와서 어부인을 모시고 큰댁을 다녀 왔다고 한다.
어제 놀러갔다 대문을 들어설 때까지는 기억하고 있었다. 저녁 6시 반에 모임이 있다는 것을, 그런데 아뿔사! 대문넘어오다 까마득이 잊어버리고 말았다. 옛날에 어떤 사람처럼.
건망증도 심하면 병이라고 한다. 그래도 맘편히 세월탓으로, 자극히 자연스런 현상으로 돌려버린다. 누구 맘대로, 내맘대로지 뭐.